 |
10서희 |
1/1 |
♀ |
|
성범윤 |
12/5 |
♂ |
|
MInKIm |
7/24 |
♂ |
 |
시원 |
6/20 |
♀ |
|
윤동훈 |
3/27 |
♂ |
전체방문 : 2,467,381
오늘방문 : 1227
어제방문 : 5336
전체글등록 : 10,822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632
댓글및쪽글 : 5458
|
| ㆍ작성자 |
서용근
|
| ㆍ작성일 |
2006-06-21 (수) 16:04 |
|
ㆍ추천: 0 ㆍ조회: 1052  
|
|
|
ㆍIP: |
|
|
안치훈씨의 또 다른 글
서소장님께
마당에 내린 눈을 볼 수 있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요. 눈이 더 내리면 산에 오르려고 장비를 손보았습니다. 언제 갈지 모르지만, 구두에 왁스칠하고, 배낭을 점검하고, 줄도 살피고 하면서 크리스마스, 오늘을 보냈습니다. 이 해가 가기 전에 아내와 함께 차한잔 마시고 십습니다. 아무쪼록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늘 맑은 웃음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아래 글은 지난 3월 동아실에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추억으로, 시간날 적에 한 번 보시기 비랍니다. 안치운 드림
동아실 폐교, 놀던 즐거움, 추억하는 기쁨
흙과 이끼의 조화
볼 것이 많았습니다. 바깥에 눈길을 주는 것은 서울에서 흔한 일이 아닙니다. 먼저 도착했을 때, 바람은 멎었고, 길가에는 아직도 겨우내 내린 눈이 쌓여 있었습니다. 엄태현 가족은 나보다 먼저 왔는데, 학교를 지나쳐 올라갔다 다시 내려오면서 차를 돌리려다 눈길에 빠져있었습니다. 아내와 내가 차 꽁무니를 밀어 차가 빠져나왔고, 폐교문을 열고 작은 운동장으로 들어갔습니다. 거뭇거뭇한 흙이 발에 밟혔습니다. 사람의 발자국이 없는 흙 위에 초록빛 이끼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습기를 머금은 흙과 이끼가 선명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아득합니다. 이곳에 살던 화전민들은 다들 떠났습니다. 몇몇 폐허만이 주인을 기다리다 지쳐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승용차가 들어갈 수 있는 임도라는 길이 생겼지만 몇년 전만 해도 길이 하도 험해서 세렉스라는 농업용 사륜구동만이 갈 수 있었고, 길은 거의 다 오솔길이었습니다.
오후 4시가 조금 못 된 시간이지만 봄 날 햇살이 산자락에 그대로 묻어있었습니다. 처음 학교에 들어서면 크게 보였던 초가집과 교실 한 칸이 시간이 흐르면서 금세 작아져 보입니다. 눈을 아예 감으면 십여년전 이 산 속 분교를 다녔던 아이들의 기척이 들리는 듯 합니다. 모두들 어디로 갔을까요. 지금은 커서 청년이 되었을 그들은 여기에 언제 다시 올 수 있는지요. 시간이 풍화되면 아이들은 어른이 될 터인데...그렇습니다. 산 속 오지마을의 폐교는 모든 것이 증발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는 그 사라지는 시간과 장소의 한 복판에 와있었습니다. 눈을 떴을 때 회원들이 하나둘씩 자동차 불빛을 던지며 기어올라오고 있었습니다.
회원들이 밤 길을 따라 학교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이 도착하는 것을 보면서, 놀라운 예감을 지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도를 주면서 길 안내를 했지만, 어둔 산 길을 무턱대고 올라온다는 것은 지도에 대한 신뢰뿐만 아니라 예감같은 것이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이 길로 가면 나온다, 맞을 것이다, 누군가가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와 같은 예감말이지요. 믿었던 것은 사실 지도가 아니라 가볍고 부드러운 길이라는 단어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다들 길을 잃지 않고 이 자리에 모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한결같이 믿고 있습니다.
올 사람들이 거의 다 모이자, 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증발되는 것을 막으려면 우선 불부터 지펴야 했습니다. 초가집과 교실을 떠받치고 있는 구들과 흙을 따뜻하게 해야 했습니다. 운동장 끝자락에 통나무들은 많았습니다. 나무 하나를 부등켜 안고 있으니 다리가 벌벌 떨렸습니다. 팔에 힘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옆에 있던 회원들이 도와주어서 나무를 옮겨와 톱으로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마에서 땀이 조금씩,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자른 나무를 다시 도끼로 내려 찍을 때 나무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얽어매고 있었던 나무 속들이 떨어지는 아픈 소리였습니다. 단 한번, 아주 짧게, 짝. 그 때마다 도끼질을 하는 이는 쾌감같은 것을 느꼈겠지만 나무는 다른 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모닥불 위로 얹혀져 발갛게 탈 것입니다. 톱질을 하다가, 도끼를 번갈아 하다가 언뜻 멈춰서서 심호흡을 하기도 합니다. 힘들어서라기 보다는 나무를 좀 더 길게 나두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나무 주변에 있는 이들은 어린애처럼 즐겁기만 합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듯이 어린애들이 불곁으로 자꾸만 몰려듭니다.
불을 찾아서
저녁이 지나고 새벽 5시가 될 때까지 다들 모닥불 주위에 몰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군불 때는 방이 따뜻해지고,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자 폐교는 지복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교실이 살아났고, 초가집의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빈 터로 있었던 폐교가 사람들이 모이는 행복한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평화로운 폐교. 마침내 쓸쓸하게 증발하고 있는 폐교가 스스로의 어둠을 모두 삼켜버리고 도시를 떠난 우리들에게 넉넉함을 주는 해방의 바다로 바뀌었습니다. 늘 그렇지만 이런 곳에 오면 이런 불가해한 체험이 되살아 납니다. 내 몸 안에 오솔길이 생깁니다. 맑고 시린 계곡물이 쉬지도 않고 흘러갑니다. 박선생이 이런 곳에서 혼자 있기가 힘들지라고 내게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으스스하게 보이지만, 사람이 모이면 산 속 조그만 터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그 숨결이 속삭이는 것을, 그것이 내 몸에 겹쳐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신기하게도 아무도 살지 않는, 혼자 있기에는 적막감이 감도는 이곳이 내게 커다른 기쁨이 됩니다.
처음 이런 곳에 오면 어중간해집니다. 자연과 인공의 사이. 누구나 인공을 싫어하고 자연을 좋아하지만 자연 속으로 침투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울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자연은 무명의 지평입니다. 그곳에는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좋습니다. 자연은 규정없는 타자의 개입을 하락합니다. 그래서 먹을 것은 손을 뻗으면 쉽게 구할 수 있었고, 태울 나무가 모자르면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나 운동장 한 켠에 가서 톱으로 자르고, 도끼로 결을 내어 장작으로 만들었습니다. 부족함과 조급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더러 부술부술 비가 내리기도 했지만 불은 여전했습니다. 교실 벽에 줄세운 빈 술병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일어나 운동장에 섰을 때, 계곡 쪽에서 하얀 이내가 스몰스몰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계곡에서 놀다 빠지기도 했고, 땅을 파서 흙을 주물러 무엇인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간밤에 2시간도 채 자지 못했지만 몸은 그런대로 맑았습니다. 농구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없습니다. 듣고 들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듣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이제 점심 식사를 마치면 짐을 꾸리고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습니다. 서울로 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름이 참 예쁜 동아실(혹은 도화실하는데)에 자주 가지 못하지만 늘 마음 속에 넣고 살고 있는 터에, 맑고 고운 풍경을 등뒤에 두고 온다는 것이 황망했습니다. 동아는 열매 이름이고, 실은 실처럼 가늘고 길게 흐르는 계곡을 뜻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참석한 회원들이 많았습니다. 이호영, 송범, 김명섭(그리고 가족 3명), 신동현( 가족 3명), 이종배(가족 2명), 이은표(가족 3명), 엄태현(가족 2명), 안치운(가족 3명), 홍창섭(가족 4명), 박영기, 이용준, 박준우, 황산덕, 김무영, 김성기, 준우, 제임스 한, 무영, 은표 후배에게 고마운 인사를 드립니다. 임원들이 잘 준비한 것에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엠티가서 이번처럼 후배들이 손에 물 묻히고 밥했던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민박하고 음식도 사먹었기 때문에 별로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가족들이 참여했고, 장소도 산 속이라 모든 것을 자급자족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곳에서 변할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자연은 늘 그렇게 있고, 사람들이 분주하게 무엇인가를 도모해야 일이 되고, 삶이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미안했습니다. 처음인데, 많은 일을 시켰어요. 장작을 준비하고, 밥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등등. 특히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무영은 힘든 일을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했어요. 그가 웃는 모습은 어찌나 보기 좋은지, 나도 그냥 웃게 되요. 몇 번 라면과 커피를 끓어달라고 부탁했는데, 다음 기회에 커피 같이 마시기로 해요. 제임스 한도 그저 웃을 뿐 별로 말하지 않고 힘든 일을 했어요. 며칠 잠을 자지 못했던 그가 교실 끝자리에서 옷도 제대로 벗지 못하고 자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분명 절차를 필요로 해요. 준우가 가마솥을 깨끗이 닦아내 밥을 해주었고, 달걀을 반쯤 삶아 먹을 수 있게 해주고, 땔나무를 동강내고, 다른 회원들과 어울려 많은 이야기를 한 것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아요. 준우는 농구장에서 별로 말이 없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몇몇 선배들이 농구, 목우회 등에 대해서 말하고, 준우에게 패스해라 라고 부탁하는 말을 모닥불 곁에서 주고 받았지만 금세 그런 부탁은 불타고 있는 나무 연기처럼 사라졌어요. 준우가 아주 가까이 있다고 다들 느꼈으니까요. 사람끼리 가까워진다는 것이 산 속 깊은 밤처럼 아득하고 아늑해져 기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의 배려는 회원들과 우리 가족 모두를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이용준 선생이 준우와 어깨동무하며 "너 안 왔으면....다들 널...."라고 했던 말은 다른 회원들이 얼마나 그와 함께 자리를 하고 싶었는가라는 뜻이었지요. 준우 후배, 그 동안 선배들 등살에 마음고생도 많았을 거예요. 그대의 농구실력은 우리보다 몇 수 높은 터라, 격을 함께 하는 데는 그런 수고가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이제 자주 웃고, 다른 회원들을 잘 보면서 수색대 출신처럼 무엇인가를 찾아보아요. 그러면 목우회 회원들이 아주 가까이 있는 친구처럼, 형들처럼 느껴질 거예요.
유혹의 눈길
이제 먹는 이야기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우리 회원들 가운데 자격증을 지닌 주방장은 없었습니다. 만들어 놓은 음식도 없었습니다. 먹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최종적으로 먹는 사람에 의해서 요리가 완성된다는 뜻이지요. 교실안, 드럼통으로 만든 난로 위에 사골을 넣은 큰 그릇을 올려 놓았습니다. 저녁부터 내일 아침까지 그냥 두었습니다. 밥도 했고, 라면도 끓여 먹었고, 커피도 마셨습니다. 창고에 식기가 많았지만, 채 꺼내 쓰지 않아서 일회용 접시와 컾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자연보호를 위해서 일회용은 그만 쓰기로 해요. 일회용은 우리들 삶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밤이 되자, 장작 숫붙을 이용해서 고기를 굽기 시작했습니다. 술잔이 돌기 시작했고, 익은 고기가 입 속으로 들어가 씹히고 삼켜졌습니다. 이용준 회원은 벌써 취했고, 김명섭회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더욱이 험한 산길을 오르다가 그만 차 연료통에 구멍이 나고 말았기 때문에, 그는 길에 흘린 기름만큼 더 마셔야 했을 것입니다. 오늘 길에 벌써 양주 한병을 비운 전과가 있는 카니발 팀은 타고 차 이름 그대로 마시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먹는 행위는 구체적으로 먹기 전과 먹는 과정으로 나누어 집니다. 먹기 전까지는 질서가 지켜져야 합니다. 고기는 익어야 하고, 사골국은 우러나야 하고, 밥은 물과 온도와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질서는 줄을 서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행위같습니다. 그런데 먹는 그 순간부터 그 질서가 와장창 깨지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먹든 상관없는 것이지요. 익은 고기가 해체되는 순간입니다. 고기가 비로소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이제부터 고기는 사람 입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고기 속에 있게 됩니다. 그래서 음식을 먹는 것은 먹을 고기와 먹는 자신이 서로 섞이는 복합적인, 행복한 일입니다. 고기의 색깔, 냄새, 재료, 형태가 밤 하늘의 어둠 속에서 보였다 스며들었다 했습니다. 공기가 이를 알고 덤뎌들었다가 물러나면, 먹는 사람 젖가락이 불판으로 다가서서 유혹의 눈초리로 내려다 봅니다. 이것을 먹을까, 저것을 고를까? 이 순간이 먹는 사람에게 가장 행복한, 요리의 시공간을 만끽하는 때입니다. 김치, 상치, 마늘, 고추장, 아늑한 요리의 세계가 커다란 식탁 위에 널려있었습니다. 그러니 냄새만 맡으면서 고기를 굽던 양복입은 주방장 보조 김무영은 얼마나 좋았을까요? 고기가 사람을 무는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포만감을 느꼈을 겁니다. 고기와 접시, 고기 앞면과 뒷면, 고기를 먹는 사람과 고기 사이의 관계를 긴밀하게 했던 김무영의 솜씨. 그는 농구 잘하는 것처럼 짜임새가 있는 회원이었습니다.
엄태현의 딸, 주원이가 바장바장 좁다란 폐교 운동장과 교실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모습은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주원이네는 저보다 조금 일찍 학교에 도착했어요. 가장 어린 녀석이 가장 먼저 와서, 오래된 폐교 안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 모습이 서로 어울려요. 주원이가 하는 말은 아직 문장이 되지 않지만, 듣고 나면 더 많은 것을 얻게 되요. 해석을 해야되니까요. 어린 녀석에게 잠자리가 불편했을 거예요. 군불때는 초가집 방을 마다하고 교실에서 아이가 잤는데 임원들이 미쳐 생각하지 못했어요.
다녀온 다음 날, 폐교를 빌려준 건축가 서용근 소장에게 전화를 해서 다녀온 소식을 전했습니다. 우리 친구들이 보시를 받았다고 했고, 힘들고 까다로운 불을 아궁이에 너무 보태서 초가집 방바닥을 태웠다고 말했고, 나무를 많이 불태웠다고 했더니, 그가 오히려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는 불편한 점이 없었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런 산골 집은 사람의 온기와 불을 때야만 집다워진다고 했고, 그런 면에서, 내게 "잠깐 생각을 바꾸"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집이 오히려 보시를 받은 것이라고. 방은 늘 그렇게 타는 것이고, 더 타면 이불이 붙어 버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땔나무 값이름으로 얼마를 준비해서 목우회 이름으로 답례를 하려고 했는데, 손사래를 쳐, 다음 주에 만나 술한잔 하기로 했습니다.
길과 산책
흔히들 호텔의 수준에 따라 별을 붙여놓습니다. 하나, 둘, 넷. 내가 그랬어요. 동아실 폐교는 하늘의 별이 무진장 많은 곳이라고요. 그랬더니 서소장님이 허허 웃어요. 그래요라고 맞장구를 치며. 동아실 폐교와 같은 곳은 우리 집 옆 스위스 그랜드 호텔보다 더 낫지요. 다른 회원들도 그렇게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건축가인 그를 만난 지 꽤 오래되었기 때문에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의 집은 일산에 있는데, 지은 그 해 건축대상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설계하고, 살고 있는데, 참 이뻐요. 회원들이 보고 싶으면 함께 가 볼 수 있습니다. 집을 이렇게도 지을 수 있구나를 보고 느낄 수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 임도를 따라 올라 계곡길로 내려오는 산책을 했습니다. 밤새 따뜻한 방에서 잔 부인들과 아이들과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위에서 말한 화전민이 살던 집, 심마니들이 치성을 드리는 곳, 산자락에 붙어있는 비단길과 같은 오솔길을 걸었습니다. 그 길을 걷는 것은 시간의 세례를 받는 것과 같았습니다. 길을 만들었고, 길 위로 걸었던 무수한 시간의 세례를 다시 받고 싶었습니다. 길은 무엇인가를 향해 흐르고 있었습니다. 임도야 차들이 다니지만, 계곡 위로 난 오솔길은 희미한 흔적으로 알아낸 것이지만 소멸을 향해 무너져 가고 있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아니 그 길은 그냥 정지한 채 있었습니다. 우리가 밟고 가기 전까지는. 이런 길은 도시에서 결코 밟을 수 없는 길입니다. 길을 걸으면서 모든 것을 안에 품을 수 있는 아주 투명한 길. 아, 이보다 더 좋은 길은 없을 것입니다. 걸으면서 뒤따라 오는 이웃들의 걸음새를 본 적이 있어요? 더 없이 매력적인 걸음걸이, 긴 억새풀이 출렁이는 밭 사이로 난 길을 걸어오는 위태로움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자세를...지금도 선명하게 보이는 듯 합니다.
걸으면서 여기서 살던 화전민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었을까? 역사는 왜 이런 사람들을 조망하지 않을까? 등등을 서로 말했습니다. 길과 나무의, 길과 사람의 존재방식. 길이 나무를 버리지 않고, 나무가 길을 앗아가지도않아 아름답게 연출된 길 언저리에 우리는 그냥 눕고 말았습니다. 길을 걷다가 상쾌해져 길이 되고 싶을 때가 있는 법처럼. 재민이하고 휘진이는 우리 산책길을 앞장서서 걷고 있었습니다. 옛 사람들은 산 속에 살면서 이런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니 그런 공간이 있는 곳에서 살았습니다. 나는 폭신폭신한 그 길을 참 좋아합니다. 조금 지나면 그 길에 풀꽃이 출렁거릴 것입니다. 녀석들이 자연을 보는지, 길을 걷는지 궁금했습니다. 막 자연에서 나온 녀석들은 그곳을 새처럼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인공 속에서 살다가 자연을 가장하지만, 아이들은 때 묻지 않는 자연같아 그렇게 자연 공간 속으로 거리낌없이 침투합니다. 어른처럼 개입한다고 여기지 않는 것이지요. 계곡 가운데 큰 바위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그 위로 올라가게 했습니다. 제가 가끔 하는 볼더링이라는 것인데, 암벽등반을 하기 위한 연습 같은 것이지요. 아이들이 돌을 잡고, 발로 밀면서 올라 갔습니다. 재환이만 빼고. 녀석은 거의 다 와서 계곡물을 건널 때 그만 미끄러져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많은 회원과 그 가족들이 큰 탈없이 지내고 서울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고, 알려드립니다. 먼길이라 걱정을 했습니다. 점심 식사후 냅다 출발했지만, 저도 돌아오는 길에 하도 졸음이 와서 아내에게 운전을 맡기고 한 시간정도 잤습니다. 용두리쯤에서 길이 막혀 서울에는 7시쯤에 도착했습니다. 연대 후문 가족이 자주 가는 중국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집에 와서 목욕을 하고 잠을 잤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참 즐겁게 주말 여행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내가 오지 여행을 즐거워했고, 아이들도 쉬지 않고 놀았습니다. 물에 빠지고, 새벽까지 어른들 곁에서 불장난하고, 교실에서 뛰고, 산 길과 계곡길을 사뿐 즈려 밟고 와서 그런지 얼굴이 맑아졌습니다. 그 동안 저만 그렇게 다닌 탓에 이번에 좋은 아버지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 쓰던 근육을 써서 그런지 몸이 조금 피로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즐겁게 놀던 일을 추억하는 기쁨뿐입니다. 그것은 시도때도 없습니다.(안치운)
|
30
|
|
공지사항
HAC 알림방
세모씨
87김도영
82-성인석
Ukulel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