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정상을 향하여

80‘ 이상세

모두들 텐트에 모여서 마지막 남은 식량들을 털고 있다. 건식 순두부 등등, 그렇지만 모두들 아침을 먹는 모습이 입맛이 없어 보인다.

어제의 강한 바람은 우리의 발목을 이곳 베를린 캠프에 하루 더 묶어두었다. 덕분에 우리는 약간의 연료만을 남기고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맛이 없어도 억지로라도 음식을 넘겨야 한다. 식사 후에 남은 연료로 물을 녹여서 수통에 채우는 일도 무척 느리다.

모두들 꼼지락 꼼지락,,, 결국은 예정했던 시간보다 한시간정도 늦었다.

그렇지만 텐트 밖에서 장비 챙기느라 느리게 움직이는 후배들에게 재촉은 하지 않는다.

오늘은 몇 일간 날씨가 나빴던 관계로 정상을 향한 사람들이 무척 많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사들을 통해서 등반을 하기 때문에 정상을 가는 중의 체증은 대단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늦은 시간에 그들이 빠져나가는 시간을 생각했다. 이곳은 대부분의 고산이 그렇듯 평상시에도 오후 네 시를 전후해서 한바탕 날 구지를 하고 대부분의 시간은 맑다. 그리고 여름인 관계로 일몰시간이 아홉시 정도는 되어야 어두워진다. 그렇다면 저녁 여덟시 정도에 캠프로 귀환을 해도 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신발에 스패츠를 신는 모습을 보다가 먼저 캠프를 출발한다. 이곳에서는 빠른 발걸음은 너무 빨리 지친다. 천천히 아주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 가장 몸에 부담이 덜 간다. 베를린 캠프의 넓은 지역에서 가장 텐트가 많이 몰려있는 곳을 지난다. 조용한 것이 이곳의 사람들은 일찍 출발들을 한 모양이다. 두꺼운 장갑을 끼었지만 예전에 부러졌던 손가락에 아릿한 통증이 몰려온다. 그 정도로 기온이 차갑다는 말이 된다. 쉴 사이 없이 손가락을 꼼지락되면서 천천히 나아간다.

베를린 캠프를 벗어나서 지욱이와 재문이의 모습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그동안 지욱이가 컨디션이 안 좋아 보여서 내 텐트에 데리고 있었지만 상태가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고민을 해본다. 저 상태로는 앞으로 잘 가야 500미터 정도일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조금 더 올라간다면, 누군가는 동행을 하고 내려와야 한다. 지금은 혼자 내려 보내도 된다. 조금 더 상태를 보다가 결국은 소리를 지른다.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서 단호한 목소리로 재문이가 가지고 있던 무전기를 가져가게 하고 베를린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무전을 하고 다른데 가지 말고 텐트에만 있으라고 단단히 이른다.

경사도가 좀 더 높아지고 눈도 많아진다. 결국은 모두 크램폰을 착용한다. 지훈이와 영재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크램폰을 신어본다. 아니 신어보기는 지난 몇일 간 여러 번 해봤지만 크램폰을 이중화에 착용을 하고 운행하는 것은 처음이다. 속으로 심히 염려가 되지만, 학재와 나 자신을 믿어본다. 시간이 지날수록 걷는 속도가 느려지고 동작들이 슬로우 모션 모드로 진입을 한다. 가끔 내려오는 사람도 있다. 중간에 약간 가파른 경사면에서 휴식을 한다. 목이 마르지 않지만 물을 마시고, 간식을 이것저것 입으로 밀어 넣는다. 차가운 기온으로 딱딱해진 바 종류는 입안에서 한참을 우물거려서 보드랍게 만들어서 넘기고, 쵸코파이 같은 것은 부스러져서 가루가 휘날리면서 흡입을 한다. 입안이 마르지 않도록 사탕을 입에 물고 되도록 천천히 녹게 하면서 다시 출발을 한다.

약간 가파른 경사를 넘어서자 넓고 완만한 설사면이 나타나고 작은 텐트크기의 지붕은 날아가고 없는 오두막이 나타났다. 인디펜덴시아이다. 아주 오래전의 보고서에도 반쯤 부서진 오두막이라서 잠은 잘 수가 없는 것이라고 했는데 아직도 그때와의 상태 차이는 모르겠지만 존재를 한다. 등반계획을 짤 때 이곳에 마지막 캠프를 설치할까 하고도 약간 고민을 한 적도 있다, 정상에서 가장 가까운 캠프가 가능한 곳이니까, 그렇지만 바람이 심하게 분다거나 눈이 많이 올 때에는 아주 위험한 지형으로 보인다.

우리의 눈앞에 젊은 청춘이 춤을 추고 있다.

이렇게 춥고 숨 가쁜 곳에서 저렇게 좋을까 ?

우리는 그 지붕 없는 곳에 배낭을 벗어놓고 다시 정상으로 향한다. 천천히 사진을 찍으면 근사할 것 같은 사면을 오른다. 시간이 흘러서 그 사면에 오르자 저 멀리에 많은 사람들이 마치 정지된 사진 같이 보인다. 그리고 가슴속을 파고드는 바람. 이곳은 횡단구간이다. 주의해야 하는 곳 ! 횡단면에서는 뮬라 캠프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대부분의 보고서에는 지루한 잡석지대라고 하지만, 내 눈앞에는 하얀 설 사면이다. 이곳에서 슬립을 하면 뮬라캠프까지 한 숨에 당도할 것 같다. 과거에 그리고 현재에도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부터 오르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약간 비틀거리기도 하고, 한 십분이면 충분히 갈 것 같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록 한 구간을 다 오르지 못했다. 횡단이 끝나는 부분부터는 릿지이다. 릿지의 반대쪽으로는 남면이 보인다. 릿지상의 동굴같이 오버행이 진 장소에 이르자 그곳에는 수많은 배낭들이 주인이 정상을 무사히, 빨리 다녀오기를 학수 고대하고 있다. 종팔이 형한테서 무전이 날라온다. 베이스와 직선거리로 열려서 무전이 된다. 캠프2로 오시겠단다. 대원들 모두를 격려해 주신다. 간간히 사람들이 내려간다. 정상을 오른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심한 고소증세로 비틀거리는 어떤 사람은 가이드로 보이는 사람에게 로프를 허리에 묶여서 내려가기도 한다. 그래도 표정들은 밝다. 이제는 정상이 아주 가깝게 보인다. 그 부분에는 마치 단체복을 입은 듯, 동일한 색의 옷들을 입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 릿지는 좁고 눈이 많아서 두 사람이 교차하기가 쉽지 않다. 눈은 강렬한 햇살에 무릅까지 빠진다. 올라가면서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내려오면 한 쪽으로 눈을 다지고 완전히 비켜서 주면서 올라간다. 학재는 오십여 미터 내 앞에 가고 있고 영재가 내 뒤를 바짝 붙어서 따라온다. 약간 멀리에서는 재문이가 지훈이와 함께 오고 있다. 이제는 정상에서의 사람들의 움직임이 좀 더 선명히 보인다. 그리고 이제는 사람들도 거의 다 내려갔다. 저 멀리에 좀 많아 보이는 듯한 한 무리의 사람들만 내려가면 그 다음에는 우리들뿐인 것 같다.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는 좀 더 오붓하게 정상에서 정상 오름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한 시간 이내에 정상을 오를 것이다. 지금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만 내려가면 그 위에는 학재 말고는 아무도 없다.

기쁜 마음으로 사람들이 지나가는 흔적 옆으로 눈을 다지고 그들이 편히 내려가도록 길을 비켜준다.

그런데, 그들 중에 빨간 옷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 앞으로 오더니 나보고 내려가란다. 가슴 오른쪽에는 POLICIA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클로즈 되었단다. 뭔소리?. 시간이 오버되어서 클로즈 하니까 내려가란다. 클로즈 ? 정상이 바로 조기 앞인데? 그리고 시간오버? 이곳에서 등반하는데 시간제한이 있다고 하는 그런 소리는 처음 듣는 소리이다. 그리고 이제 네 시 정도이고 아직 해가 쨍쨍하다. 그리고 요 몇 일간의 경험으로는 앞으로 네 다섯 시간은 날씨가 좋다. 또한 갑자기 날씨가 나빠질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내려가면 저 위에 있는 학재는? 그리고 내일 다시 올라와야 하는데 베를린 캠프에는 식량이 하나도 없고 연료도 버너에 있는 것뿐이다. 결국 캠프2로 내려갔다 와야 하는데 우리 대원들은 그것을 수행할 체력이 남아있지 않다. 우리는 예비일을 모두 소진해서 모래에는 이곳을 철수해야한다. 결국은 다음에 다시 와야 하는데 ,,,

이런 모든 생각들이 머리를 맴돌면서 머릿속에서 폭발을 한다.

안돼 !

이런 상황에서는 무조건 올라가야해 !

갑자기 내 입에서는 그들의 앞에서 대표로 떠들어대는 젊은 폴리시아에게 더 큰 목소리로 항의를 해대기 시작한다. 그가 안돼 내려 가야해 ! 하면 나는 더 큰소리로 더 많이 막 떠들어댄다. 그 기세에 밀렸슴인지 뒤에 있던 나이가 많아 보이는 폴리시아가 참견을 하고, 나를 가로막고 본부와 교신을 하는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느껴진다. 결국은 위에 먼저 가있는 친구와 뒤의 두 명, 모두 안전하게 등반을 하고 빨리 내려오라는 말을 듣고 그들에게서 풀려난다. 영재와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들에게서 빨리 멀어지고자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러나 조금 후에 들리는 재문이의 비명소리!

형 !

이 사람들이 우리 내려가래요 !

재문이(지욱이한테 무전기를 딸려 보냈기 때문에 무전기가 없다) 한테 답답한 마음에 몇 번 소리를 질러서 의사소통을 하지만 더 이상 도와 줄 방법이 없다. 공연히 그들을 원망을 해보지만 재문이와 지훈이의 하산 길은 막을 수가 없다. 거액의 입장료를 받으면서 이곳의 회사들을 통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움직인다고 도와주지는 않았으면서 경찰이 정상에 먼저 와서 등반하고 있는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끌고 내려가는 현실에서 무언가 강력히 항의하고 싶지만 이 상황을 속으로만 울분을 토할 뿐 아무런 힘이 없다.

재문이의 애처로운 울부짖음을 뒤로하고 정상을 향한다.

이제 마음속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

오로지 뜨겁게 내 머리와 몸뚱이를 달구고 있는 태양의 열기와 눈에 반사되어 나를 괴롭게 만드는 태양빛의 사나운 기운에 견디면서 한발 한발 앞으로 오를 뿐이다.

내가 어디에 있는가하는 존재감을 잊어가려고 할 즈음에 아스라이 학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 왔어 ! 힘 내 !

멀어져가던 의식이 현실로 돌아온다.

어! 여기가 어디지?

맞아 나는 지금 아콩카구아 정상을 향하고 있었어,

아까 그 못된 폴리시아들과 너무 열을 냈었나보다.

정신 차리자.

정상에서 멀리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잠시 감상에 젖어본다.

이곳을 오름으로서 그동안 나를 짓누르고 있었던 것들에게서 해방이야.

힘들었지만,

기분은 시원하다.

정상에 오르면 주변의 모든 것들을 바라볼 수가 있어서 좋지만 너무 늦지 않도록 내려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