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이재문

4시 55분 지훈이가 깨운다. 25분 늦게 일어났다. 알람소리를 못 들었나보다.

다행히도 듬직한 지훈이는 나를 깨웠다. 빨리 준비해서 옆텐트로 건너갔다.

텐트에서 아침을 준비했다.

아침은 순두부와, 핫쵸코, 김치국밥과 밥을 했다. 요리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물도 끓였다. 이건 내가 생각한 아침이 아니었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초조해졌다. 빨리 가야하는데, 물을 끓이다 어느덧 시간은 7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이렇게 물 끓이는데 오래 걸릴 줄 알았으면 더 일찍 일어날걸 그랬다. 7시 20분 원래 출발하려던 시간보다 1시간이나 늦어졌다. 가는데 뱃속에서 신호가 온다. ‘신호가 올꺼면 진작에 올 것이지, 꼭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휴식을 할 때 갈까 지금 갈까 고민하다가, 그저께 속이 안 좋아서 고생했던 것을 생각해 지금 잠시 화장실을 들렸다가 가기로 했다. 번거롭다. 우모복에 자켓에 오바트라우져까지 벗어야 한다. 7시 40분 다시 합류하여 출발을 하였다.

출발은 완만한 길이다. 가는데 그리 힘들지 않다. 컨디션도 회복되었다. 느낌이 좋다. 잘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8시34분 지욱이가 뒤처지기 시작했다. 그냥 뒤처지는 게 아니라 그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현재 선두에 있는 상세형, 영재, 지훈이와 50m정도 벌어졌다. 곧 상세형의 무전이 왔다. ‘지욱이가 갈 수 있겠나?’ 지욱이는 갈 수 있겠다고 내게 말했다. 상세형께 조금 더 지켜보고 안 되겠으면 내려 보내자고 했다. 하지만 형들은 내려 보내라고 하셨다. 경험이 많으신 형들의 결정이었다. 지욱이가 지금까지 고생을 많이 해서 데려가고 싶었지만, 어찌할 수 없었다. 이대로 두면 지욱이와 나 둘 다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8시 47분 지욱이는 저 멀리 내려갔다.

나는 속도를 내어 선두그룹에 붙었다.

내가 올라서자 전체적인 목표를 위해 단호히 결정을 해야 했다고 상세형은 내 망설임을 나무라셨다. 그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크램폰을 착용하기로 결정했다. 이제는 면장갑하나만 껴도 무방할 정도로 따뜻해졌다.

인디펜던스로 올라가는 길에 하산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팀을 만났다.

바람이 많이 불어 summit을 포기 했다고 한다.

포기하고 내려가는 그들의 표정은 이상하게도 신나보였다. 어쩌면 그들은 또다시 도전할 기회가 많기 때문에 우리만큼 부담이 없는지도 몰랐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잘하라고 격려도 해주고 충고도 해주었다.

10:40 인디펜던시아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잠깐 쉬어갔다. 부서진 4-5인용 텐트 하나만한 조그만 대피소 건물이 덜렁 있을 뿐이다. 학재형, 상세형, 지훈이는 간식과 물만 휴대하고 올라가기로 했다. 나와 영재는 가방을 계속 들고 갔다. 인디펜던시아에서 언덕을 오르자마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갑자기 추워졌다. 나는 우모복을 입고 장갑을 두꺼운 것을 꼈다. 윈드 트래버스 구간은 좌우로 경사가 큰 곳이라서 옆으로 넘어졌다가는 베이스캠프까지 미끄러질 기세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2000년 故강준호 선배님이 하산 중에 사고를 당한 곳이기도 하다. 트래버스 구간에 경사가 생기자 속도가 더뎌지고 조금씩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2시 20분 동굴에 도착했다. 힘들다. 영재도 옆에서 올라오면서 힘들었다고 한다. 행동식과 물을 먹고 다시 힘을 내어 출발을 했다. 동굴에서 올라가는 길은 너무 안 좋았다. 잘못 디디면 눈이 무너져 미끌어지는 경사진 너덜지대였다. 지훈이가 점점 뒤쳐졌다. 지훈이는 힘들다고 계속 쉬었다 가려했다. ‘지훈아 가자’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고 기운도 없어 보였다. 난 지훈이를 계속 격려했다.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라고 어여 힘내 가자고 했다. 이 속도로 봤을 때 7시정도는 되어야 정상을 찍을 것만 같았다. 17시 안 좋은 길이 거의 끝났다. 남은 길은 걸어가는 길만 남은 듯했다. 지훈이는 한 7m정도 뒤에 있었다.

그런데 저 앞에서 무언가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릴 정도로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다. 상세형한테 내려가라고 하고 있었다. 불안하다. 정상을 코앞에 두고 내려갈 수 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상황을 보아하니 상세형은 어떻게든 뚫고 갈 기세를 보였다. 내가 지금이라도 저기를 합류한다면 나도 운 좋게 올라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훈이가 뒤에 있어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결국 상세형과 영재는 통과되었고,

어떤 policia가 내려오면서 내게 말을 걸었다. 나보고 시간을 알려주는 듯했다. 아마 19라는 숫자를 말하는 게 그때까지 내려오라는 것 같았다.

다행이다. 올라갈 수 있겠다. 지훈이를 5분만 더 쉬게 한다음에 출발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번에는 다른 policia가 내려왔다. 그가 또 나를 불렀따. “꼬레아노!” 날 부르는 목소리톤이 불길하여 못들은 척했다. 그러자 바로 앞에서 “헤이 꼬레아노”라고 불렀다.

그는 나보고 고 다운만 연신 외쳤다.

가스가 껴서 빨리 내려가야 한다고 하는 듯 했다. 화가 났다.

사고가 나지 않게 하려는 그들의 입장은 이해가 되지만, 적어도 이런 시간 제한이 있으면 미리 표기를 해놓던가 말로 해주던가 했어야 했다. 아무말 없다가 이제 와서 정상 바로 코앞에서 내려가라고 하면 ‘네 알겠습니다’ 하고 내려가야 하는 걸까? 따지고 싶었지만 이 녀석은 영어를 못했다. 내가 말을 안 듣자 점점 강압적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옆에 있는 다른 아르헨티나 사람이 이 사람 경찰이라고 말을 들으라 했다. 상세형이랑 통화하기 위해 무전기를 빌려달라고 했는데 무전기도 빌려주지 않았다.

이건 내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그런 상대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동굴로 내려가는데 길이 역시나 안 좋았다. 내려가는데 지훈이가 몇 번을 굴렀다. 고산에서 하지근력이 약화 된다는 걸 증명하듯 지훈이가 계속 미끄러지면 내려갔다. 나한테 내려가라고 하던 policia는 지훈이의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더니 상태가 안좋다고 했다. 더 이상의 반항은 할 수 없었다. 지훈이가 상태가 안좋다면 내려가야 했다. 나도 그리 상태가 좋지 않았다. 지훈이는 폴리시아의 캐어를 받으면서 내려갔다.

동굴을 지나 트래버스를 따라 가는데 이제 형들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가스가 끼고 있는데 형들은 간식이랑 물만 가지고 올라가셨다. ‘설마 형들이 내려오다가 힘든 상황이 와서 비박이라도 하면 어떡하지?’ ‘영재도 같은 1학년인데 영재 상태가 나빠져서 내려오는데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지?’ 내가 텐트를 지고 다시 인디펜던시아로 올라가야 하나? 하고 걱정하면 내려가고 있는데 학재형이 갑자기 나타나셨다.

학재형은 정상을 공격하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폴리시아가 캐어하던 것을 형이 이어 받아 같이 내려갔다.

이제 마음이 놓였다. 형들이랑 영재는 아무탈 없이 내려올 것이다.

안심이 되자 억울함이 몰려왔다.

내가 여기 오려고 준비해왔던게 얼만데, 이렇게 끝내고 내려가는구나, 인디펜던시아의 눈덮인 언덕위에 누워 아콩카구아 정상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눈물이 났다.

이렇게 너를 보는 것도 끝이겠구나 허무하고, 억울하고,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만약 원래 계획대로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면’, ‘만약 지훈이가 체력이 좋아서 뒤처지지만 않았다면’, ‘만약 내가 맨뒤에서 재학생을 캐어하는 역할을 하지만 않았다면’ 결국 결론은 내가 운이 나빴던 것이다.

내가 열심히 해서 우리 팀이 올라갔다면 내가 굳이 못갔어도 된 것이다.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흐르는 눈물은 막을 수가 없었다.

안타까움은 어쩔 수 없었나보다.

내려오는 길에 눈밭에 계속 앉아 있었다.

그리고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아팠던 두통중에 가장 심했다.

즐거운 마음으로는 고소도 잘안온다고 했던가,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망연자실해 있자,

고소가 왔다,

그것도 심하게, 걸어서 내려가는데 어지러워서 토할것만 같았다.

겨우 텐트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텐트안으로 돌아왔다.

머리가 아프다.

아파죽을것만 같다.

아파서 더 이상 딴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아스피린을 두 개를 먹고 두 개를 또 먹었다.

억지로 잠을 청했다.

그렇게 누워 있다가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