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재

– 산은 그저 오르고 다시 내려 갈뿐이다

아침에 강릉에 있는 기순형에게 부탁해서 귀하게 얻은 동결 순두부에 밥을 말아 먹고 출발준비를 한다.

밖에 걸어놓은 온도계가 새벽에 영하 18도 이었다고 한다. 여기에 부는 바람이니 체감온도가 상당할 것 같

다. 어제 정상을 향한 준비를 했다고 하지만 추운 아침에 일어나 움직이는 것은 시원치가 않다. 좁은 텐트

 안에서 빠져 나와 하늘을 본다. 맑게 게인 하늘이 오늘의 일정을 환하게 열어준다.

나는 출발하기 전에 기념사진 한 장 찍으려고 부산을 떨고 있었는데 상세가 막내들의 움직이는 모습이 시

원치 않았는지 먼저 간다는 한마디 하고 먼저 휙 나가 버린다. 그러자 다른 대원들도 서둘러 따라 나선다.

나가는 모습 사진을 찍고 마지막으로 텐트를 돌아보고 뒷정리 할 것이 있나 둘러보니 후배들이 잔 텐트의

 인너텐트의 뒷문을 닫지도 않고 나가버렸다. 혹시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눈가루가 날리면 텐트 안으로 다

 들어갈 판국이다.

이것저것 혹시 우리가 없을 때 문제점이 생길 수 있는 곳을 정리하고 나도 정상을 향해서 출발을 한다. 대

피소가 있는 캠프에 올라오니 이곳의 많은 사람들은 이미 출발을 했는지 조용하다. 베이스 에서부터 이

디든 간에 캠프에서 출발을 하면 바로 급경사로 이루어져 이내 호흡이 가빠온다. 사면을 오르는 길은 눈이

 잘 다져져있어서 오르기 편하다. 다만 경사가 급해서 호흡이 점점 거칠어진다.

인디펜덴시아로 향하는 길은 마치 보이지 않는 미로처럼 위로만 향해져 있다. 나는 이미 뒤에 처진 지욱이

를 보살피며 따라온 재문이를 추월해서 지나가며 지욱이의 상태로 보아서는 동행 할 수 없는 걸음 거리인

데도 상태를 물어보면 걸을 수 있다는 말만을 되풀이 한다.

주위에서 내려가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본인이 철수 결정을 해줬으면 좋으련만 절대 내려

가겠다는 소리를 안 한다. 나는 더 이상 볼 수가 없어서 상세에게 지욱이를 내려 보내자고 했다. 그의 걸음

이 너무 늦어서 그의 속도에 맞추어 가다가는 아무도 정상에 갈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또한 덜 지쳐 보이

는 지훈이도 함께 내려 보내고 싶지만 이 결정은 상세가 해야 함으로 그에게 이야기했지만 그는 데리고 올

라가려고 마음을 먹었는지 이야기를 안 한다.

좋은 사진을 찍겠다고 무거운 카메라를 지고 올라오니 오른쪽 어깨에 통증이 심하다. 걷는 것 조차 힘들 정

도로 허리까지 통증이 내려온다.

인디펜덴시아 대피소에 올라오니 햇살에 바람한 점 없고 따뜻한 기운이 올라온다.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처음으로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다리를 쭉 뻗어서 휴식을 취한다.

앞서 올라와있던 두 남녀가 연인인지 불륜인지 양지 바른 곳에 앉아서 서로 이야기를 할 때마다 키스를 한

다. 우리가 계속 쉬고 있자 자리를 털고서 일어나 내려간다.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다.

눈 위에서 빛나는 햇살에 눈이 아픈 것인지 기분이 잡친 것에 눈이 아픈 것인지 안경을 벗어서 눈을 비벼본

다. 나는 더 이상 배낭을 메고 올라가는 것이 어깨의 통증에 무리일 것 같아서 배낭을 놓고 가기로 했다. 그

러자 상세와 재문이 지훈이도 놓고 간다. 그리고 낮의 기온이 높아서 거추장스러운 우모복도 두고 간다.

보온병은 놔두고 간식과 수통만 챙겨서 안전 밸트에 매달았다. 이곳에서 정상을 향하는 길은 모두 눈사태

의 위험적인 각도로 이루어져 있어서 불안감을 놓을 수가 없다. 다만 눈이 아주 많이 오지 않아서 걱정은

 덜 하였지만 그래도 눈 속에 쳐 박혀본 경험이 있어서 불안하다. 약 100미터의 급경사로 이루어진 사면을

 지그재그로 힘겹게 올라가서 능선에 올라선다.

이곳에선 정상부근까지 올라가는 길이 거의 한 눈에 들어온다. 낙석으로 트래버스 할 때 위험한 구간이라

고 하던 곳인가 보다. 하지만 지금은 예년에 아니 근간에 들어 눈이 많이 와서 낙석의 위험보다는 눈사태의

 위험을 걱정해야하는 지경이다. 사면을 가로 질러간다는 것은 그 사면이 끝날 때까지 무방비 상태로 노출

되어지는 것이다.

능선에 올라서서 잠시 쉬고 있는데 매서운 바람이 분다. 방풍의 안의 열이 순식간에 빠져 나가면서 바로 추

위가 몰려온다. 나 빼고 모두 우모복을 입고 있어서 그리 추워 보이지 않지만 가볍게 입고 있는 나는 추위

를 느낀다. 바람만 불지 않는 다면 추울 것 같지 않은데 너무 바람이 세게 분다. 정상을 다녀오는 시간이 짧

으면 그냥 진행해도 좋을 것 같은데 망설여진다. 다시 내려가서 우모복을 갈아입고 오자니 그동안 올라온

 길이 아깝다. 더군다나 지금 올라온 경사도는 그동안 올라온 그 다른 길보다 센 것 같아서 우모복을 두고

 온 것에 후회한다. 이렇게 가면 추위에 너무 노출되어서 등반에 지장이 있을 것 같다. 결국은 지금까지 올

라온 것을 아까워하면서 다시 내려가서 옷을 갈아입기로 했다.

고생해서 올라온 길을 내려가려니 약간 억울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좀 더 쾌적한 등반을 위해서는 잔 대가

리 부린 것에 대해서 감수를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

내려갔다 오는 사이 대원들이 많이 올라가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멀리 가 있지 않다. 트레버스 구간의

 중간쯤에서 상세까지 추월을 했다. 좋은 사진 찍겠다고 먼저 발길을 바삐 옮겨서 횡단 구간을 지나서 큰

 바위 밑까지 갔다.

이곳에서 대원들이 올라오는 모습을 이리저리 찍어댄다. 상세와 영재가 올라오고 재문이는 지훈이를 데리

고 올라온다. 지훈이의 몸놀림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정상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곳 횡단을

 끝내고 건너온 지점이 지도에는 동굴이라고 나오는데 이곳의 지형은 동굴이 아니라 절벽의 오버행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앞서간 사람들의 많은 배낭들이 눈 위나 바위틈에 끼워 놓은 것이 보인다. 보통은 여기에 배낭을 놓고 올라

가는 모양이다. 나는 미리 저 밑에다 놓고 왔는데 여기와 저 밑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배낭

 사이로 한명의 외국인이 햇빛을 받으며 자고 있다. 짐을 지키고 있는 자 아니면 고소 증세로 더 이상 못가

고 여기서 일행을 기다리는 자 일 것이다.

플라스틱 드럼통에 와이어로 떨어지지 말라고 고정시켜놓고 열쇄가 채워져 있다. 이것은 분명 여행사의 준

비물 일 것이다. 아니면 경찰들의 구조 장비일 것이다.

이 동굴을 지나면서 부터는 사면이 아니라 능선의 바위벽 밑을 따라서 올라간다. 간혹 이곳을 등반하는 사

람 중에서 헬멧을 메고 가는 것을 보고 의문점이 있었는데 이제 사 그 의문점이 사라진다. 오른쪽으로 이어

지는 능선의 바위는 모두 쉽게 부숴지는 바위 형태를 이루고 있어서 이곳을 지나가다가 간혹 낙석에 맞을

 우려가 있는 것이다.

우리 일행이 동굴 앞에 다 모여서 간단히 간식과 물로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 먼저 올라온 나는 앞으로 나선

다. 어차피 상세 일행과는 속도가 맞지 않아서 혼자 올라가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동굴을 지나면서 앞서

 등반하던 외국인들이 하나 둘씩 내려오기 시작한다. 나에게 인사를 하며 즐겁게 내려가는 사람도 있고 거

의 다리가 풀려서 경사면을 아주 힘겹게 내려오는 사람, 고소증세로 다른 사람에게 안전 줄로 묶여서 내려

가는 사람 등등 다양하다. 그 중에 증세가 심한 사람은 허벅지에 주사를 맞는 모습도 보인다. 이해 못할 것

 중에 하나가 무리 중에 한두 명은 꼭 고소증세로 안전 줄에 묶여서 내려온다. 올라가기는 했는데 내려 올

 때 다리가 풀린 모양이다. 아무리 걷는 것이 쉬운 산이라고 해도 경사면에서 추락의 위험에 대비해서 문제

가 있는 사람은 안전하게 묶어서 내려온다.

고도를 높일수록 상세와의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 시야에서 너무 멀어져서 그들의 행동을 주시 할 수가 없

다. 정상에서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마지막 힘을 다해서 올라간다.

정상을 100여 터 남겨두고 오를 때 위에서 마지막으로 내려오는 일행을 만났다. 그들 중에 상당수가 현지

 경찰들이다. 나를 보고 혼자 오르는 것이냐 물어본다. 나의 일행들이 밑에 오르고 있다고 이야기하니 날씨

가 나빠지니 빨리 철수해야 한다고 한다. 내 시계의 시간을 보니 4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어서 6시까지 있다

가 하산을 하겠다고 하니 경찰은 오케이를 외치며 등반을 잘하라고 어깨를 토닥여 주고 휑하니 내려간다.

 정상에 대한 궁금증에 큰 기대를 가지고 정상에 오르니 넓은 평지가 나온다. 그동안 보아오던 다른 봉우리

 정상의 분위기와 전혀 다르다. 너무 넓다. 이런 곳을 보니 나의 옛 친구 박동하가 오래전 인수에서 패러그

라이딩으로 뛰어 내리는데 이륙장이 좁아서 여러 번을 시도하다가 남면 쪽으로 뛰어내리던 기억이 난다.

 그것을 기억하면서 여기는 그냥 아주 편하게 뛸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한다.

상세를 기다리면서 혼자서 카메라를 바위에 얹어놓고 이리저리 독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사방의 경치를 담

기도 하고 정상에 있는 십자가, 표지석, 동판을 찾아다니며 카메라에 담는다.

남미 아니 이곳에서 말하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왔다. 사방에 펼쳐지는 고봉들을 바라

보며 새로운 것에 도전해서 그 정점에 닿을 때 얻어지는 편안함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다.

그 정점의 끝은 또 다른 새로운 등반의 시작이 되니 또 다른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린

다.

혼자서 이것저것 실컷 놀아도 상세일행은 올라오지 않는다.

다시 내려가서 같이 올라올까 생각을 하다가 이내 그만 둔다.

체력을 아껴야 다음 행동에 무리가 없을 것 같아서 무전으로 계속해서 상세를 독려하면서 기다리고 있다.

애타게 기다리던 상세가 올라왔다.

상세는 갑자기 나를 껴안으며 수고했다는 한마디를 던진다.

나도 같이 뒤를 따라온 영재와 같이 부등 켜 안고 정상등정의 기쁨을 만끽한다.

상세는 2005년도부터 시작한 오대륙 최고봉 완등의 정점을 찍는 날이다.

그것도 산악부 막내 1학년과 함께 오른 이 곳 아콩카구아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나 또한 그의 흥분에 함께 동화되어서 눈물이 난다.

같이 부대끼며 인수로, 설악으로, 한라산으로 싸돌아다니면서 함께 지낸 나날들이 이 순간 스쳐 지나간다.

베이스(뮬라 캠프)에 계시는 종팔형의 축하 메시지를 무전기로 받으며 우리는 하산을 위해서 일어선다.

이렇게 산은

그저 오르고 다시 내려 갈 뿐이다.
 

그것 이외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없다.

또다른 오름을 위해서 내려가야 한다.

정상의 기쁨을 뒤로하고